유관순 열사가 주도한 아우네 장터 만세운동보다 한 달여 앞서

아시나요? "부여군의 3.1운동"

충남에서 가장 먼저 집단으로 3.1운동이 시작된 곳이 부여입니다.

ⓒ 내외경제 TV/충남 / 부여군 충화면 3.6만세운동 재현 행사

 1919년 3월 6일 충화면에서 발원하여 임천장에서 天道敎人 주도로 수많은 군중이 만세를 부르며 일본헌병대(扶餘憲兵分隊)로 몰려가 『우리 땅은 비워주고 너희들은 물러가라』며 충남 최초 집단으로 독립만세 운동을 외쳤고, 같은 날 은산면에서도 만세운동이 있었다.

 또한, 3월 7일에는 부여면민 수천여 명이 백마강에 모여 읍내로 진입하여 만세운동을 벌였고, 홍산면에서도 면민들이 각처 큰 산 위에서 횃불을 올리며 독립만세 운동을 벌였다.

 부여군 3.6 충화발원 · 임천장 만세운동은 계속해서 당진, 논산, 아산, 대전, 강경으로 독립만세 운동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관순 열사의 제암리 3.1운동보다 무려 한 달여 앞서 만세운동이 있었던 곳이다.

 부여의 독립운동은 한말 의병투쟁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에는 3.1운동을 부여를 비롯해 각지에서 펼쳤으며, 1920년대 이후 청년운동, 농민운동, 사회운동 등 활발한 민족운동을 전개해 왔다.

 이는 부여인의 긍지이며 기상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여러 방면에서 활발한 독립운동이 전개됨에도 불구하고 부여인의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고 있지 않다.

 1919년 3월 6일 임천면 헌병대앞에서 "조선은 이미 독립했으니 너희들은 정권을 내 놓아라","대한독립만세","대한독립만세","일본은 물러가라"며 만세운동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1919년 3월6일 천도교도들의 주도로 수많은 군중들이 만세를 부르며 임천면사무소와 보통학교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부여헌병대 임천분대로 몰려가 "조선은 이미 독립했으니 너희들은 정권을 내 놓아라""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기미년 3월의 함성이 유족들과 참여자들의 귀에도 들리는 듯 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부여군 내에서는 최초로 집단화 되어 거행된 3.1만세운동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들은 사형 등의 판결을 받지는 않았지만 1년여의 옥고를 치루며 병상이 악화되었고, 어떤 이는 징역 대신 환영(매)을 맞고 병을 얻어 죽음을 맞이하였다.

 박용화(당39세, 충화면 팔충리), 박성요(당29세, 충화면 팔충리), 황우경(당45세, 임천면 비정리), 문재동(당52세, 내산면 지티리), 최용철(당35세, 충화면 팔충리), 황긍채(당40세, 임천면 비정리), 정판동(26세, 충화면 팔충리-본적: 서산군 남면), 이들이 처음 충화에서 출발할 적에는 오십여 명의 군중들이 있었지만 30리 길을 걸어 임천관아가 보이는 솔고개에 이르렀을 때에는 고작 10여명 밖에 남아 있질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곧 임천면민에게 호소하였고, 임천면사무소와 보통학교 앞에서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벌이고 부여헌병대 임천분대로 몰려가 헌병대에 의해서 체포될 당시에는 7인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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