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파리 마레지구서 35년된 식료품점의 폐업…'젠트리피케이션' 희생양
등록일 : 2020-02-05 14:40 | 최종 승인 : 2020-02-05 16:31
김한성

[내외경제=김한성] 파리 마레지구에서 35년간 운영됐던 식료품가게가 문을 닫는다(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

프랑스 파리 마레지구에서 무려 35년이나 운영했던 한 식료품 가게가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면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모로코에서 파리로 이주해 '오 마르셰 듀 마레'라는 작은 가게를 운영했던 아마르와 알리 시타예브 형제는 이번 달 말 가게 문을 완전히 닫는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가게 문을 닫기 전 그동안 가게를 즐겨찾았던 단골 손님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것 뿐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 가게는 오는 31일(현지시간) 파리에 소재한 다른 모든 작은 가게나 카페들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의 희생량이 되어 완전히 문을 닫는다. 가게나 나간 후의 빈 자리에는 '프린세스 탐탐'이라는 여성용 란제리 체인점이 들어선다. 

NYT의 유럽 경제 분야 수석 특파원인 리즈 앨더만은 기사를 통해 이 가게의 폐점 소식을 처음 접했을때 어안이 벙벙했다고 말했다.

2000년 파리로 이주한 앨더만은 "이 시기 식료품점 근처의 주변 지역에 디자이너 부티크 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곧 수 천명의 방문객들이 몰리는 아웃도어 쇼핑 메카로 자리잡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모로코에서 온 시타예브 형제와 아침 출근길에 오고가며 인사하는 사이였다"며 "미국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까지 사소한 대화들을 나눴다"라고 설명했다.

이들 형제는 10대 시절이었던 1970년대 고향인 모로코를 떠나 프랑스로 이주했다. 처음에는 식당에서 서빙을 하거나 설겆이를 하는 등의 일을 했으며, 이후에는 돈을 더 많이 벌기위해 오후 7시 넘어서도 장사를 할 수 있는 편의점 일을 하기도 했다.

1984년에는 마레지구에서 마침내 자신들의 상점을 오픈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당시 프랑스의 대통령은 프랑수아 미테랑이었으며, 유대인 지구인 마레지구는 노동자 계급들이 주로 일하는 섬유 및 금속 공장들이 즐비했다.

물론 중간에 상점을 닫고 은퇴를 고려한 적도 있었다. 지난 2015년 화재로 상점이 피해를 입으면서 역경을 맞았지만, 이들에게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웃들로 인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니클로와 씨어리, 꼼뜨와데꼬또니에 등 대형 소매 체인을 거느리고 있는 일본의 대기업 패스트 리테일링은 자사의 란제리 체인점을 들고와 이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흐름을 거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프랑스 전역에 걸쳐 확산되는 추세다(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

앨더만은 이와 관련해 "상점의 이웃들이 시테예브 형제들의 폐점에 대해 한탄스러워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웃들에게 이들 형제는 자신들의 개인사들, 즉 결혼이나 이혼, 자녀 및 다른 여러가지 일들을 모두 말하고 열쇠까지 맡길 수 있는 막역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이 가게 근처에서 거주하던 의사 에바 보는 "가게가 문을 닫는 것을 보는 것이 슬프다"라고 말했다. 이 동네에서 진정에서 필요한 것은 다른 디자이너 부티크가 아니라 시테예브 형제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번 시테예브 형제의 사례가 급변하고 있는 파리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상점이 폐쇄되면서, 부유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명품 브랜드들이 어떻게 이웃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징조라는 것으로, 이는 주민들에게 불안감을 가중시킨다고 전했다.

사실 이러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비단 파리뿐 아니라 전역의 다른 도시에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엑상프로방스부터 랭스, 투르, 스트라스부르에 이르기까지 소규모의 베이커리샵과 카페, 여러 가게들이 엄청난 부를 앞세운 소매 대기업들에 의해 점령당하고 있는 것이다.

마레지구만해도 문을 닫는 식료품점 근처의 산드로와 마쥬, 클로디피에로 등 의류 체인점들은 미국 사모펀드 회사인 KKR의 소유권으로 확장되면서, 중국 섬유 기업인 산동루이에게 매각됐다. 빵집과 서점은 라코스테와 쿠플스가 소유한 체인으로 대체됐다.

이들 기업은 모두 스위스 내 가장 큰 개인 소유 소매 그룹인 모스 프레르 소유다. 게다가 샤넬과 LVMH 모에 헤네시 역시 향수 및 메이크업 매장을 개설, 마레지구의 부동산 가격을 급등시켰다.

특히 슈퍼마켓 체인인 카지노 그룹과 까르푸가 운영하는 심야 편의점의 등장은 지역 내 작은 독립 소매점들에게 커다란 압력으로 다가왔다. 경쟁이 보다 치열해지면서, 이미 터를 잡고 있던 코너 상점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