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비자로 입국해 미국에 눌러앉는 사람들, 국경 넘는 이들보다 2배 더 많아
등록일 : 2019-12-06 14:24 | 최종 승인 : 2019-12-11 17:45
이성재
비자를 통해 미국에 입국해 불법 체류하는 이들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사진=플리커)

[내외경제=이성재] 미국의 불법체류자 약 1,00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합법적으로 입국해 비자 체류 기간이 넘어도 되돌아가지 않은 이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금융 위기 당시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온 스탠포드대 응급 간호사 엘리 오의 가족도 이같은 사례에 해당된다. 그는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부모님은 그렇지 않다.

지난 1988년 한국이 금융 위기에 휩쓸리며 비상 체제에 돌입하던 당시, 산업 엔지니어로 일하던 오의 아버지는 그만 실직에 처했다. 뾰족한 대책이 없던 오는 저축했던 모든 사비를 털어 가족을 캘리포니아로 데려갔다. 당시 그는 미 대사관에 여행을 갈 것이라고 밝혔고, 이에 따라 6개월짜리 방문 비자를 발급받았다.

당시 가족은 한 친척이 임대하는 작은 아파트가 있던 서니베일로 이동했는데, 2개의 방에서 무려 9명의 사람들과 함께 지냈다. 아버지는 거기서 페인트공, 그리고 어머니는 웨이트레스 일을 시작했다. 당시 11살이었던 오와 동생은 학교에 입학했다.

자녀 위해 미국서 돈 번 필리핀 가족

마릴린 오마탕이라는 필리핀 여성은 2004년 12살짜리 자녀 딘과 함께 마닐라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동, 거기서 남편과 합류했다. 그리고 아예 미국에 남아 특수아동이었던 자녀의 의료비와, 당시 친척 집에서 묶던 다른 3명 자녀의 교육비를 벌기 시작했다.

오마탕이 취업한 곳은 편의점인 세븐일레븐이었다. 그는 일하면서도 자녀들의 치료비와 학비를 댈 수 있는 충분한 돈을 모았다. 이후 매니저로 승진했지만, 동료가 상사에게 불법체류라는 사실을 고자질하면서 해고됐다.

최근 몇 년간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온 사람들보다 비자를 통해 들어온 사람들이 두 배나 더 많다(사진=위키미디어커먼스)

세븐일레븐에서 해고된 지 10년이 지난 현재는 실리콘밸리에서 부유한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한다. 그동안 소득세 신고 때마다 가명을 사용해 이민자 신분이 노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의 고용주 중 한 명이 불법체류자에 대한 강경한 정책을 이어가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란 사실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같은 상황은 오와 오마탕만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매일 약 35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아시아와 남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온다. 바로 제한된 기간 동안만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비자를 통해서다. 그러나 일부는 비자가 만료된 후에도 국경을 넘어온 이민자와 같은 동일한 지위를 스스로 선택한다.

불법체류자 1,100만 명, 비자 통해 미국으로 입국

미국 내 불법이민자 수는 약 1,100만 명에 달하지만, 이들이 모두 힘겹게 사막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온 이들은 아니다. 

절반 가량은 바로 비자를 발급받아 합법적으로 미국 공항에 입국했다. 그러나 비자 체류 기간이 넘어도 되돌아가지 않은 것 뿐이다.

이민연구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2010~2017년 사이 미국에 도착한 불법체류자 350만 명 중 65%는 여권을 통해 완전한 입국 허가를 받았다. 가장 많은 수치를 보인 곳은 인도였다.

실제로 인구조사국이 연간 진행하는 미국커뮤니티 설문조사를 통해 불법 체류 추정 규모를 조사한 로버트 워렌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온 사람들보다 비자를 통해 들어온 사람들이 두 배나 더 많다.

 

 

이들은 이민센터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 불법체류자 1,070만 명 중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약 100만 명의 초과 체류자들 가운데 가장 많은 수치는 전통적으로 멕시코가 차지했지만, 최근에는 이같은 양상도 변화하고 있다. 

2010~2017년까지 약 33만 명의 인도인들이 비자를 통해 불법 체류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필리핀, 베네수엘라, 브라질, 그리고 콜롬비아 역시 많은 수를 차지했다.

또한 아시아인들의 경우 대다수가 서니베일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근처 실리콘밸리에 소재한 애플과 링크드인같은 기술 기업들이 많은 불법체류 외국인들을 고용하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이들 기업이 미국에서 합법적인 직업이나 영주권을 가지도록 후원하고 있기 때문. 이에 일부는 비자가 만료됐거나 비자를 지원해준 회사를 떠난 후에도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 계속 일하기도 한다.

 

 

올해 1분기 법정 이민 및 현황

미 국토안보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동안 25만 7,000명의 외국인이 합법적인 영주권자(LPR) 자격을 확보했다. 14만 명 이상은 이미 합법적인 지위를 얻었으며, 11만 7,000명은 새롭게 입국했다.

2019년 회계연도의 1분기에서 새롭게 LPR을 확보한 인구 중 39%는 상위 6개국이 차지했다. 멕시코를 비롯한 중국, 인도, 쿠바, 도미니카공화국, 그리고 필리핀이다.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이민 변호사로 활동하는 칼파나 페디보틀라는, 비자가 만료된 이들 중 많은 수가 불법 체류할 의사가 없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입국했다, 여러가지 이유들로 불법체류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자신의 지위를 바로잡을 수 있는 손쉬운 방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차라리 가족과 집이 있는 미국 땅에서 영원히 머물기로 결정하게 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