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경제TV 칼럼] 여고시절, 학교는 천국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해당화가 곱게 핀 교정에 서서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때 이미 어른 됨의 고달픔을 알아버린 걸까?

나로서는 공부와 학교가 모두 좋았다. 대신 집이 싫었다.

대단히 불우한 환경이라서 아니라 어머니의 '훈육' 탓이었다.

학교에는 좋은 친구들이 많았고 나를 예뻐해 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셨다.

수재는 아니었지만 공부도 잘했다.

'귀신도 물어가지 않는 문제투성이 아이'는 학교에서는 모범생에 그런대로 인기도 있었다.

또한 공부가 재미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

학창시절 내내 학교는 천국이었다. 학교제도란 것이 없었으면 무슨 낙으로 살았을까?

나는 국,영,수를 매우 잘했다. 암기 과목은 국,영,수 만큼은 아니었지만 괜찮았다. 그러나 체육, 음악 등 예체능은 자신이 없었다. 암기 과목 중 세계사가 특히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개념과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때문인 듯하다.

발음이 까다로운 외래어와 해당 연도를 달달 외우면서도 의미는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아편전쟁(1840~1842) 하나만은 팍, 이해가 됐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때 울화통 터지던 심정.

세상에! 자국 아편을 팔아먹겠다고 남의 나라 사람들을 마약 중독쟁이로 만들겠다는 심보 말이다. 남의 나라에 마약 팔겠다고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들이라니!

나는 흥분했다.

유럽의 변방에 있는 영국이라는 '깡패'(당시의 행태로 보면 깡패가 맞다!)가 대제국 청나라를 종이 호랑이라고 만천하에 공개한 전쟁. 전쟁의 패배로 중국정부는 영국 마약상의 거래행위를 합법화해주었고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 했고 홍콩을 빼앗겼으며 수 백 만 명의 중국인이 마약중독자가 되었고 새로운 중독자가 속출하는 상황을 보고 있어야 했다.

그 후 오랫동안 유럽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원주민을 살해하고 고혈을 빨아먹는 이미지는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유럽 제국주의는 막을 내렸지만 새로운 '세계제국'이 지금 우리 앞에 출현중이다. 또한 유럽 제국주의의 유물인 자본과 과학은 혁명적인 속도로 새로운 혁명, 일명 4차 산업혁명의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이 시점에서 묻고 싶다. 인간은 무엇인가?

나는 종종 인간에 대해 절망한다. 그때마다 니체가 내게 일장연설을 한다.

너는 지금 도덕주의에 경도돼 있구나

인간은 목적도 이유도 죄도 없다. 인간은 어리석을 뿐이다. 미래의 인류는 지금보다 높은 지성으로 다른 배움, 다른 앎으로 나갈 것이다.

니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선한 행위와 나쁜 행위사이에는 종류의 차이가 아니라 기껏해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선한 행위란 승화된 나쁜 행위이며, 나쁜 행위란 다듬어지지 않고 어리석은 선한 행위이다.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개인의 유일한 욕망(이것은 자기만족을 상실할 거라는 공포감에서 유래한다)은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이 스스로 행할 수 있는 대로, 즉 행해야만 하는 대로 하면 만족되는 것이다. 그것이 허영, 복수, 쾌락, 유용성, 악의, 간계의 행동이든, 헌신, 동정, 인식의 행동이든 상관없이 만족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런 욕망에 의해 어디까지 끌려가게 되는지는 판단 능력의 정도가 결정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Ⅰ, 107>

니체는 인간의 오류 역시 '인류가 점차 자기 조명과 자기구원에 까지 향상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고 평가한다. 즉 인간에게는 오류가 필요하고 오류가 구원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라는 것.

향후 인류는 도덕적 인류에서 현명한 인류로 변화할 것이라고.

그렇다면 니체가 말하는, 새롭고 현명한 인류는 어떤 특성을 지녔을까?

우리에게 '초인' 혹은 '위버멘쉬(overman)'로 알려져 있는 미래의 인류는 중기작으로 분류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도 그 단초가 나타나고 있다.

"잘못 평가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유전적인 습관이 우리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지배할지라도, 그런 습관은 점점 자라나는 인식의 영향을 받아 점점 약화되어갈 것이다

새로운 습관, 즉 이해하고 사랑하지 않으며, 미워하지 않고 달관하는 습관은 우리 속에서 조금씩 같은 땅을 경작하여 수천 년 후에는 아마도 현명하고 죄 없는 (무죄를 인식하는) 인간을 규칙적으로 산출해낼 힘을 인류에게 부여할 만큼 충분히 강해질 것이다" <같은 책, 107>

인류의 행위는 오류이며 '자연과 필연성을 칭찬하고 비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니체는 말한다. 인간 또한 자연의 예술작품이므로 예술작품을 칭찬하고 비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역사가 가리키는 인류의 오류를 통해 우리는 현명한 인류로 나갈 수 있을까? 아니면 나락으로 떨어질까?

니체의 '소박한' 신인류(위버멘쉬)론에 비하면 최근 주목받고 있는 유발 하라리는 매우 혁명적인 신인류의 도래를 '예언'을 한다.

현재의 '호모 사피엔스' 종은 종말을 고하고 '신이 된 동물'이 온다고.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2050년이 되면 일부 사람들은 이미 죽지 않는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일명 불멸하는 사이보그와 비유기물 존재들이 세상을 '접수'하는 사태를 공상과학영화가 아닌 현실로 받아들인다. 이들이 곧 우리의 후계자들이며 신 비슷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즉 필멸의 인간이 불멸의 신을 향해 가는 지점에 지금 우리가 있다는 진단이다. 이 경우 종교, 이데올로기, 국가, 계급, 성별 등의 논쟁은 무화된다.

빅뱅을 특이점으로 정의하는 물리학자들의 견해를 따라 하라리는 '우리는 빅뱅이후 새로운 특이점에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진단한다. 우리 세계에 의미를 부여했던 모든 개념이 완전히 무관해지는 지점으로 가는 도정 말이다.

그는 새로 출현하는 특이적 인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원히 젊은 사이보그가 불멸하며, 번식도 하지 않고, 성별도 없으며, 다른 존재들과 생각을 직접 공유할 수 있다면? 집중하고 기억하는 능력은 인간의 수천 배에 이르며, 화를 내거나 슬퍼하지 않는 대신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감정과 욕망을 가지고 있다면?"

한마디로 우리 종으로서는 이해 불능인 '신'들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말한다.

"아마도 우리와 미래 주인공들의 차이는 우리와 네안데르탈인의 차이보다 더욱 클 것이다. 적어도 우리와 네안데르탈인은 같은 인간이지만, 우리의 후계자들은 신 비슷한 존재일 것이다" -<사피엔스>중

그러나 아직 우리의 의무가 끝나지는 않았다.

종교나 정치체제, 국가, 성별 같은 것은 신인류에게는 사멸할 논쟁거리이지만 "적어도 이 신들의 첫 세대만큼은 인간 설계자들의 문화적 아이디어에 따라 그 모습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에 역사상 위대한 논쟁이 아직은 중요하다"고. 이 논쟁에 대한 답에 따라 그들 신인류가 가는 길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

향후 '호모 사피엔스를 다른 종류의 존재로 업그레이드하는 과학 프로젝트'를 중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고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라는 것이다.

이 질문을 그는 섬뜩하게 느낀다.

도래할 신인류는 무엇을 원하는 존재일까? 지금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

그동안 숱한 피의 대가를 치르고 얻어낸 인류의 수많은 가치들이 곧 블랙홀로 사라지는 순간을 목도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니체도 훅, 한 방에 날아가 버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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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 작가, '주부재취업처방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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