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경제TV 칼럼] 지난 2017년 3월 29일 고등학교를 자퇴한 16세 김 모양이 인천의 한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8세 여자아이를 자기가 사는 아파트로 데려가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살해당한 어린아이의 시신은 훼손된 상태로 발견되었고, 서울 잠실에 거주하는 또 다른 10대 박 모양이 공범(共犯)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단순한 살해사건이 아니라 주범(主犯)이 시신을 훼손한 후 신체의 일부를 공범에게 전달했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경악하였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이러한 범죄행위는 주범이 '조현병' 또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은 적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마지막 퍼즐조각이 맞춰진 것 같았고, 그후 인천 초등학생 살인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조용히 잊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최근에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방송 이후 피해 아동의 모친이 쓴 호소문이 이 사건을 되돌아보게 해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기된 이 사건의 의문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주범의 정신상태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점이고, 둘째는 공범이 살인에 대해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피의자가 '조현병' 혹은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인천지검에서 국립정신건강센터에 피의자의 정신감정을 의뢰한 결과, '조현병'일 가능성은 작다는 소견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소아정신과 전문의에 따르면 아스퍼거 증후군은 범죄적 폭력의 위험성을 높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문가의 주장은 주범이 심신미약의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줍니다.

그리고 공범과 주범이 나눈 SNS 대화로 미뤄볼 때, 상식적으로 공범이 살인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사냥을 나간다." "잡아왔어, 상황이 좋았어." "살아있어, 여자애야." "손가락 예뻐?" "침착해. 알아서 처리해." 등등 이 둘이 주고받은 대화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공범이 아무리 상황극에 따른 설정이라고 변명을 해도 이미 저지른 살인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리고 죄값을 치르기에 앞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은 피해자에 대한 죄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범죄가 세상사람들의 지탄을 받는 이유는 가해자와 그 가족이 죄의식을 눈곱만큼도 갖고 있지 않은 듯한 행태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감경을 위해 구치소로 아스퍼거 증후군 관련 서적을 보내줬다는 주범의 부모나 대통령 탄핵 변호인단보다 많은 12명의 변호인단(나중에 3명으로 줄었지만)을 구성한 공범의 부모 모두 피해 아동과 그 가족에 대해 일말의 죄의식도 갖고 있지 않은 듯합니다.

아무리 흉측한 범죄를 저질렀어도 자식은 품에 안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긴 합니다. 하지만 자식을 품에 안는 것은 사회 상규가 허락하는 선에서 용인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죄를 짓고도 뻔뻔한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 많아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도덕과 체면, 정의감, 책임감 같은 것보다 돈이 우선하는 사회가 되면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부모가 잘못된 선택을 하면 사회적 규제를 통해 이를 바로잡아줘야 하는데 이번 사건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전관을 포함한 12명의 변호사가 이번 사건에 선임된 것은 우리 사회가 돈이면 다 되는 사회로 확실하게 변질된 것을 의미합니다. 확실하게 변질됐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전문가 집단의 양심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미란다 고지에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어도 이런 사건에 변호인이 줄을 지어 선임계를 냈다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게다가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급 정도 되는 무게 있는 변호사가 이 사건을 맡으려 했다는 것은 우리사회가 지도층의 자발적 윤리의식에 의지해서 유지해 나가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이 잘못을 바로잡는 데 사회적 에너지가 너무 많이 쓰였습니다. 우선 피해자 모친이 애끓는 마음으로 호소문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추스르기도 힘든 이분들에게 가해자의 단죄까지 신경쓰게 하는 비정한 아픔을 안겨주었습니다. 공분(公憤)에 따른 사회적 피곤함도 켜켜이 쌓여갔습니다. 몇몇 사람만 정신차렸으면 되는 일이 '을'이 대다수인 국민의 심신을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이 12명의 변호사 중 9명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비난이 일자 슬그머니 사임계를 냈습니다. 진작에 그랬어야 했습니다.

문제의 핵심에는 돈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수십 년 공직에 봉직했던 고귀한신 분도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다 보니, 돈이 무섭지 사람은 무섭지 않은 세상이 된 것입니다. 명예니 직업윤리니 하는 것들이 이미 헌신짝이 되어버려서 전관을 이용해서 수천만 원의 고문료를 받는 고위직 공무원들의 경우는 매번 인사청문회마다 끊임없이 보아왔습니다. 이제는 으레 그러려니 할 정도로 이런 비상식적인 돈의 먹이 사슬이 상식이 되어버린 사회가 된 것입니다.

율사(律士)와 의사는 사람들의 절실함에 기대어 돈을 버는 직업입니다. 하나는 생명을, 하나는 형량 또는 신원(伸寃)을 다루는 일을 합니다. 역사적으로 사회는 이 두 직업에게 넉넉한 금전적 보상을 용인했습니다. 전문가로서 그 격에 맞는 대접을 해준 것입니다. 그런데 전문가 집단이 스스로 그 격을 떨어뜨리면 사회는 혼란에 빠집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딱 그 꼴입니다.

오늘은 87년 민주화 운동에 군부독재가 6·29 선언을 하면서 백기를 든 날입니다. 87년에는 군부독재가 우리사회가 넘어야 할 산이었습니다. 그리고 30년이 흐른 지금, 우리 앞에는 좀 더 정교하게 담장을 쌓아 놓은 가진 자들만의 울타리가 쳐져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이기기 어렵다는 말로 벌써부터 포기를 권합니다'라는 피살된 아이의 엄마가 쓴 호소문을 보며 우리 사회가 빠져있는 자괴감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기기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힘이 없어서 외면해야 했던 모든 것들에 대해 맞서 싸워 이기기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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