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경제TV 칼럼] "트럼프가 미국을 불량 국가(rouge state)로 바꾸고 있습니다"

이 말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주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선언했을 때 매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이 쏟아 낸 비난 논평입니다. 로빈슨은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온 후 변호사로 활동했던 여성 정치인으로 유엔 인권고등판무관까지 역임한 국제 사회의 진보적 지성입니다.

사전에 보니 영어 'rogue'란 단어는'불한당''다른 사람(나라)들과 달리 위험하고 해로운 행동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나라)'을 뜻합니다. 사회의 상궤를 벗어나 혼자만 주변에 해악과 위험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인 듯합니다.

'불량국가'란 용어는 미국이 2001년 9·11테러를 당한 후 자주 쓰던 말입니다.

미국이 불량국가로 분류하는 기준을 보면 자국민 인권을 극도로 유린하고, 국제테러를 지원하며, 대량살상무기를 확산시키면서 극단적인 반미 성향을 가진 국가를 지칭하는 말로 북한, 이란, 시리아, 수단이 불량국가 명단에 들어갔습니다.

아마 로빈슨 전 대통령은 미국을 불량국가로 생각하지도 않을 테고, 불량국가로 변할 가능성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후변화 같은 중차대한 인류 생존의 문제를 놓고 전 세계 국가가 합의한 국제질서에 따르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에 대한 분개의 감정이 이런 극단적인 표현으로 분출되었다고 봅니다.

프랑스의 신예 지도자로 등장한 마크롱 대통령의 성명이 의미심장합니다. "미국에 고하고 싶습니다. 프랑스는 미국을 믿습니다. 세계는 미국을 신뢰합니다. 미국은 위대합니다. 나는 당신네 역사를 압니다. 우리와 공통인 역사 말입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를 제치고 미국인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 같습니다. 공통의 가치관 위에서 유럽과 미국이 합리적으로 쌓아올린 과학과 문명에 기초한 파리협정을 지키자는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국에 '불량국가'의 딱지를 붙이기에는 아직 그렇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량 지도자' 딱지를 붙이는 데 동의하는 사람은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난 25년 동안 기후변화는 우여곡절의 논쟁을 거치면서도 21세기 인류의 생존에 절실한 문제라는 과학적 합의에 이르렀고 195개 유엔회원국이 자발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결의하고 파리협정에 서명한 것입니다. 북한도 참여했습니다. 파리협정에 참여하지 않은 나라는 두 나라가 있습니다. 시리아와 니카라과입니다.

인류 운명이 걸린 기후변화 문제에 미국이 시리아나 니카라과와 함께 아웃사이더 극소수 그룹에 섰다는 것이 역설적이게 느껴집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량한(rogue) 행동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세계 최고의 막강한 힘을 가진 미국이 파리협정 체제 안에서 자국에 유리하게 협상을 이끌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국제 정치 논평가들은 트럼프의 파리협정 탈퇴선언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불협화음과 묶어 트럼프 대통령이 만들고 있는 거대한 힘의 공백이라고 합니다. 2차 대전 이후 가장 큰 국제질서의 변동으로 봅니다. 국제정치에서 힘의 공백은 누군가에 의해 채워집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 공백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됩니다. 실제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파리협정 준수를 다짐했고, 그 공백을 중국이 차지하려 움직이는 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또는 독일이 지정학적 위상과 막강한 산업능력을 바탕으로 미국이 남긴 공백을 메울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국제정치의 파워 게임에 의해 극복될 문제가 아니라는 데 심각성이 있습니다. 책임이 큰 나라가 큰 부담을 지고 작은 나라도 적극 참여해야 할 사안입니다. 미국이 빠진 파리협정 체제는 리더십 문제로 서서히 분열하고 정체 상태에 빠질 것입니다.

트럼프의 나라 미국에서 파리협정 탈퇴에 대한 반동이 거세질 것입니다. 트럼프 선언에 반대하는 시위가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 기업들이 파리협정에 남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을 배출한 엑손모빌 같은 석유회사가 그런 입장이고, 테슬라 CEO 일런 머스크는 트럼프 선언 이후 백악관 경제자문단에서 탈퇴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많은 IT기업들이 트럼프 선언에 실망하고 있습니다.

미국인의 정서는 지난 4월 발표된 '예일 여론조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미국인 69%가 파리협정에 남아야 한다고 응답했고, 탈퇴해야 한다는 응답은 13%였습니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과는 달리 미국의 각 주와 도시는 독자적인 온실가스감축 정책을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 주는 그 선두에 서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 지방 정부는 물론 전 세계 국가들의 기후변화 대응 전선은 한계와 혼선에 직면할 것입니다.

파리협정을 탈퇴한 트럼프는 4년 후 백악관을 떠나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동안에도 지구의 기온은 계속 올라가고 기후 재앙의 그림자는 지구촌을 짙게 덮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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