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경제TV 칼럼]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논란으로 전 세계 시장에서 고전하는 폴크스바겐이 국내에서는 오히려 승승장구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에 대해 커지고 있는 소비자의 반감(反感)을 할인 행사로 잠재우면서 수입차를 사려는 고객을 대거 끌어들인 것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달 가장 많이 팔린 수입차는 폴크스바겐 티구안이다. 티구안 2.0 TDI 블루모션은 5월 한 달간 769대가 팔려 BMW, 벤츠 등 경쟁모델들을 제쳤다. 미국이나 일본, 브라질, 러시아에서는 폴스크바겐에 대한 불신으로 판매가 곤두박질치는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물론 국내에서도 배기가스 조작 사태가 한창이던 작년 10월 판매량이 전월 대비 70%가까이 추락하긴 했었다. 판매 대수가 급감하자 다급해진 폴크스바겐 코리아는 전 차종을 대상으로 특별 무이자 할부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현금 구매 고객에게도 같은 혜택이 제공돼 최대 1772만원의 현금 할인이 가능했다. 이 때문에 국산 중형차를 살 돈으로 할부, 할인 등을 받으면 폴크스바겐 차량을 살 수 있었고, 한 달 만에 판매량은 4배 이상 늘었다.

재미를 붙인 폴크스바겐은 그 뒤로도 판매가 부진하다 싶으면 할인행사로 돌파구를 찾았다. 폴크스바겐은 국내에서 월 평균 3000대 가량 팔고 있어 평년 수준을 회복한 것 뿐 아니라 월간 최고 수준의 실적이라는 반전을 이뤄냈다. 불과 몇 달 전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배기가스 조작 사태 주인공에 대한 거부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은 대개 윤리와 자기 이익이 충돌할 경우 후자를 택한다. 머릿속에서 윤리의 정당성을 따져보다가도 이내 자기 잇속을 챙기는 것이 우리 삶의 맨얼굴이다. 폴크스바겐 차를 사지도 않았을 뿐더러, 자신은 꽤나 윤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선뜻 와 닿지 않는 얘기일 수 있다.

그럼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착한 기업과 착하지 않은 기업이 있다면 당신은 어느 회사에서 만든 물건을 사겠는가. 아마 착한 기업 물건일거다. 그렇다면 착하지 않은 기업에서 착한 기업보다 더 싸면서 좋은 물건을 만든다면 그때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런 선택이 나의 문제가 된다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자신에게 관대한 잣대를 적용하면서, 정작 비윤리적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상황, 이것을 블라인드 스폿(blind spots)이라고 한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미처 보지 못하는 윤리적 사각지대인 것이다. 서서히 진행되는 비윤리적 행위는 알아차리기도 어렵고, 자연스럽게 합리화되어 가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폴크스바겐 차를 구입한 소비자 다수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자동차는 잘 달라고 연비 좋고 가격 저렴하면 최고 아닌가. 물론 환경 문제를 보면 찝찝하지만 당장 눈에 띄는 것도 아니고 후손들을 생각하라고 하는데 지금 나 하나, 우리 가족 챙기기도 버겁다. 그리고 비윤리적 기업이 폴크스바겐뿐인가?'

문제는 이런 블라인드 스폿이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신에게 이익만 된다면 모든 게 용서되는 곳이 한국이라는 인상이 굳어지면 이미 한국에 들어온 글로벌 기업은 물론 향후 한국에 입성하는 기업들도 '한국 소비자는 원래 그래'하고 비윤리적 마케팅이나 경영을 서슴치 않을 것이다. 돈이면 다 해결되는 한국이라는 이미지는 우리 모두를 위해 매우 불행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폴크스바겐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차량 환불은 물론 총 102억 달러(12조원)에 달하는 추가 배상금을 지불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불성실한 리콜계획서를 제출해 환경부로부터 3차례나 퇴짜를 맞았다.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금전적인 배상 계획도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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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경영연구소 이은진 럼니스트

VC경영연구소 교수 및 칼럼니스트,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당신도 몰랐던 행동심리학', '소크라테스와 협상하라', 'HRD컨설팅 인사이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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