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경제TV] 지난 11일 현대상선의 구조조정 최대 난제였던 용선료 협상이 타결되었다. 현대상선은 이번 협상을 통해 향후 3년 6개월간 지급예정인 용선료 약 2조5000억원 중 약 5300억원에 대해 일부는 신주로 지급하고 나머지는 장기 채권으로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현대상선은 1년 평균 5300억원의 현금 지출이 줄어들고 안정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사실 이번 협상은 해운사가 용선료를 인하한 선례를 찾아보기 힘들고 또한 용선 계약이 통상 5~15년 장기계약으로 맺게 되어 있어 계약 변경을 요구하는 것은 법적 분쟁이 될 수 있으며, 대외적인 신뢰도가 하락될 수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협상 타결이 쉽지 않았다. 결국 급한 불은 껐지만 이번 협상이 어떤 협상학적으로는 어떤 공과(功過)가 있는지 다음의 네 가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첫째, 모든 협상에서는 '시간'이 중요한 요소로 작동되며, 시간이 부족한 쪽은 무조건 불리한 위치에 처해진다. 우리 정부는 처음부터 데드라인을 공표했다. 1차 데드라인을 5월 20로 정했고, 1차 시간 내 타결이 되지 않자 2차 데드라인을 5월 30일로 정했다. 이렇게 시간을 정하면 선주들이 어떻게 나오겠는가? 시간이 부족할수록 불리한 쪽은 현대상선이다. 그런데 그 시간을 만방에 알렸으니 선주들이 시간을 끄는 건 당연한 순리다. 만약 정해진 데드라인 내에 타결이 되지 않았을 때 혹독한 페널티가 가해졌다면 선주들의 태도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잘 활용한 측면도 있었다. 만약 용선료 인하에 실패한다면 채권단의 동의를 얻지 못해 자율협약이 아닌 '법정관리'에 들어가야 한다는 방법을 활용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선주들은 기존 계약에 따라 지급받아야 할 용선료를 받지 못하고 가압류에 걸려 운항을 하지 못하게 된다. 즉, 법정관리가 현대상선의 마지막 압박전술로 먹힌 것이다.

둘째, 협상의 주도권을 빼앗겼다. 현대상선은 계약서상 '갑'이다. 돈을 주는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현대상선이 '을'이 되어 선주들의 눈치를 봐야했다. 협상결렬(walk-away) 전술을 활용하며 '내가 망하면 너도 망한다'라는 식의 배짱을 부려야 했다. 사실 우리나라의 대기업은 이런 식의 협상을 잘한다. 예를 들면 노조와 협상시 임금인상, 성과급, 다양한 복리후생비 인상에도 불구하고 거뜬하게 '갑'의 협상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유독 글로벌 협상에서는 주도권을 발휘하지 못한다. 물론 정부의 시간압박과 협상 환경과 조건의 차이가 있지만 아쉬운 대목이다. 이번 협상을 통해서 '등가교환의 법칙'이 얼마나 잘 구현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셋째, 협상에서 'If~then' 전술이 있다. 이는 기만전술이 아닌 정당한 전술로서 나의 요구사항만을 주장하기 보다는 상대의 수용 가능한 다양한 옵션을 듣고 나의 요구사항을 제시하는 전술을 말한다. 그동안 사업을 함께해 온 파트너라는 것을 점을 강조하면서 '세계 경기가 다시 살아난다면 용선료를 어떻게 조정해주겠다'던지, '일시적으로 용선료를 조정하는 것보다 경기의 변동에 따라서 용선료를 몇 퍼센트씩 조정해나가자'던지 여러 가지 가능한 옵션을 모아서 양쪽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선택한다면 서로 윈-윈 협상이 가능하다.

넷째, 행동으로 옮긴 리더십이다. 당시 협상은 다나오스, 나비오스 등 그리스계 컨테이너선 선주 4곳은 참석했으나 영국계 조디악이 아예 불참하면서 결국 소득 없이 끝났다. 당시 협상단은 이때가 가장 고비였다. 조디악은 현대상선에 비교적 최근 건조한 배를 빌려줘 용선료가 시세보다 5% 정도만 높았고, 이 때문에 협상이 특히 어려웠다. 조디악의 깐깐한 태도로 협상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이 눈물어린 이메일로 호소한 것이 적효했다. 현정은 회장은 "조디악은 과거에도 현대상선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힘을 빌려준 든든한 친구였다. 나는 대주주에서 물러나지만, 현대상선을 꼭 좀 도와달라"고 적어 보냈다. 현대상선은 오퍼 회장 비서진으로부터 이메일을 직접 읽었다는 회신을 받았고, 이후 조디악에서 다시 대화해보자고 제안하면서 협상이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이다. 협상에서 '관계(relationship)'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현대상선 용선료 협상은 유례없는 새로운 형태의 시도였다는 점에서 긍정의 선례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 스포츠 선수들은 실적이 부진한 경우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해 다음 대회에서 잘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각오하고 실천한다. 우리나라의 협상력도 이런 진일보한 각오로 표현되고 실천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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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경영연구소 대표 정인호

정인호 VC경영연구소 대표는 경영학 박사 겸 경영평론가다. 현재 SERI CEO 전문강사, 한국표준협회 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글로벌 기업 및 공기관 등 1000여 곳의 기업과 기관에 강의와 컨설팅을 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협상의 심리학', '소크라테스와 협상하라', '다음은 없다', 'HRD 컨설팅 인사이트', '당신도 몰랐던 행동심리학'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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