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경제TV 칼럼] 있어 보이는 것도 하나의 능력인 시대가 왔다. 이를 두고 최근에 등장한 신조어가 바로 '있어빌리티'다. '있다'와 능력을 뜻하는 영어단어 '어빌리티(ability)'를 합친 있어빌리티는 연출과 설정을 통해 자기 과시를 극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있어빌리티의 신조는 '그럴싸하게'다. 통장잔고가 0원이라도 결코 빈곤해 보여선 안되며 책장에는 읽지 않는 책들이 수두룩 꽂혀있고 각종 스낵걸쳐를 통해 습득한 얇고 넓은 지식으로 중무장되어 되어 있어야 있어빌리티 세계에 명함을 내밀 수 있다.

이런 있어빌리티, 혹은 허세는 정치권에서도 주목받는 키워드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부동산 부자 도널드 트럼프가 허세 캐릭터로 인기를 끄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다른 후보들이 주로 자가용과 기차로 미국 각 주를 이동하며 유세를 한다면 트럼프는 고급 전용기를 타고 대륙을 누비고 있다. 지난 2011년 구매한 보잉 757기종, 이름하여 '트럼프 포스원(Trump Force One)'으로 불린다. 유튜브에 공개한 내부 영상을 보면 그야말로 휘황찬란하다. 세면대를 포함해 내부 곳곳이 금으로 장식돼 있고 가죽 쇼파에는 태블릿PC 등 IT기기가, 기내 전면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설치됐다.

이처럼 전용기 모습을 대대적으로 공개하고 자신의 재산이 공식 내역보다 많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을 부풀리는 트럼프의 허세 혹은 이미지메이킹은 그의 사업전략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아무 생각없는 오버액션 같지만 철저한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1983년 뉴욕에 그 유명한 트럼프 타워를 지었다. 최고급 청동색 유리로 사방을 둘렀고, 5층에서 지하 1층까지 쏟아지는 인공폭포로 장식했다. 당시 트럼프 타워의 임대료는 주변 시세보다 훨씬 비쌌지만, 입주 신청은 쇄도했다.

이 뿐이 아니다. 애틀랜틱시에 카지노를 설립할 당시, 첫 삽도 뜨지 않았던 시점에서 당시 사업파트너였던 홀리데이인 호텔의 이사회가 건축공정을 보고 싶다는 요구를 해왔다. 이에 트럼프는 공사장에 수백 개의 불도저와 덤프트럭을 동원하여 그야말로 공사 퍼포먼스를 펼쳤고, 즉시 카지노 건설을 승인 받았다.

트럼트는 지금껏 많은 이가 미덕이라고 치켜세우던 겸손 대신 잘난 척, 있는 척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런데 그럴수록 오히려 지지율은 올라가는 기현상을 보인다. 왜일까? 기업의 천재들(진 랜드럼)에 실린 트럼프의 말에 힌트가 있다.

"내가 무엇인가를 선전하는 핵심 방법은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환상에 영합해 움직인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대단치 않다고 생각하지만 대단한 사람을 보면 흥분하고 좋아한다"

자기PR시대.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있어 보이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당연한 심리다. 시간과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개성을 용납하지 않는 보수적인 공동체 생활에서 자신을 브랜딩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때문에 있어빌리티는 주어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연출해 가치 있게 보이도록 만드는 자기 브랜딩 기술인 셈이다.

실제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81.6%가 '자기과시를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자기를 어필하기 위해서'가 63.8%로 가장 높았고, '남들보다 눈에 띄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서'라는 의견이 뒤를 이었다.

오늘도 많은 있어빌리티들은 자신의 생활에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며 SNS를 통해 자신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나의 본모습'보다는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하는 자신의 이미지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러한 태도를 경계한다.

본질이 빠져버리면 그럴싸한 포장에 그치기 마련인 것이다. 있어빌리티, 현대인의 기본 스펙일까? 아니면 무한경쟁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씁쓸한 단면일까. 중요한 건 그 어떤 있어빌리티를 적용해도 핵심가치가 빛을 잃지 않도록 자신 본연의 능력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진정한 있어빌리티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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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진 칼럼니스트

VC경영연구소 교수 및 칼럼니스트,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당신도 몰랐던 행동심리학', '소크라테스와 협상하라', 'HRD컨설팅 인사이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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